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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2] 이야기를 담은 제품, 모리(최창남 메이드)

2020.6.15 306
[EP. 12] 이야기를 담은 제품, 모리(최창남 메이드)


제품이 예술이 되는 것은

이야기가 담기기 때문입니다.


색깔과 형태로

제품이 의미를 전달하는 법을 고민하는

27년 경력의 핸드메이드 아티스트,


최창남 디자이너를 만났습니다.



최창남 디자이너. ©marymond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모리의 대표 디자이너 최창남입니다. 대표는 제 남편이고, 저는 ‘최창남 메이드’라는 하위 브랜드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요. 모리에서는 디자인 실장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일을 시작했나.

원래 연극했습니다. 집이 좀 잘 살았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집이 망했죠. 가장이 됐고, 가족한테 들어가는 돈을 벌어야 했어요. 그때 처음 팔찌를 만들었죠. 원래 엄마는 한복집 하고 오빠는 가죽끈 관련 일을 했거든요? 집은 망했지만 실과 가죽이 많았고, 이걸 사용해서 뭐라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죠. 손재주는 없지만 머리 땋는 일만큼은 자신이 있었어요. 그걸 응용해서 제품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최창남 디자이너님이 팔찌를 엮는 모습. ©marymond



판매는 어디서 했나.

그게 문제였어요. 제가 좀 더 똑똑하고 부지런했으면 남대문 가는 길도 찾아보고, 시장에서 물건 사입해서 유통하는지 배웠을 텐데, 어린 나이에 딱딱 맞춰서 하긴 어려웠죠. 장사를 준비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생계형으로 하다보니, 그냥 길바닥에 자리 깔고 앉아서 하는 게 전부였죠.


길바닥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당구장에서 쓰는 예쁜 색깔 부직포를 화방에서 구해다가 물건을 깔았어요. 원색 위에 제품을 놓으니까 잘 어울리더라고요. 거기서 꿇어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어요. 내가 밥 먹고 살라고 돈 주시는데, 적어도 이렇게 꿇어 앉아서 일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정성스러운 마음이 길거리 손님한테 먹힌 것 같아요.(웃음)


힘들긴 했죠. 길바닥에 있을 때 가장 힘든 건 아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야 창남아 네가 웬일이냐?” 하고 말 거는 친구들도 있고, 공연이 많은 시기에는 선배들도 지나가고. 저한테 수고한다 얘기해주시는데, 그게 저한테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어요.


제가 꿇어 앉아서 일했다고 했죠? 그게 신성한 의식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식으로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혼자서 감동받을 수 있는 요소를 만드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최창남 메이드의 제품. ©marymond


실제로 잘 되었나.

운이 좋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길거리 핸드메이드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한 셈인데, 이미 외국에는 이런 문화가 있긴 했거든요? 그 당시 압구정은 잘 사는 동네라서 외국에서 오시는 분이 많았고, 한국에서도 이런 문화가 시작된다면서 좋아해주시는 분이 많았어요. 어린 애가 쓰레기통 옆에 노점 깔고 장사하는 게 신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죠. 제가 말 재주가 좋은 편이라 손님들한테 이것저것 얘기를 해가면서 팔기도 했고요. 저는 연극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장사에 소질이 있더라고요(웃음).


배운 것도 많았겠다.

길은 학교였어요. 손님들이 오셔서 많이 가르쳐주셨죠. “왜 돈밖에 없어요?”라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빨간색 실만 쓰는 이유를 저한테 물어보신 거였어요. 그때 집에 있던 실이 빨간색뿐이라서 쓴 거였거든요. 하여튼 빨간색에 재물의 뜻이 담겼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우정이나 사랑 없냐고 묻는 분도 많았어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그러면서 색채학을 공부했죠. 색깔마다 의미가 있고 그걸 엮어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거예요. 나중에 도자기 만드는 공부를 하면서 조형이나 모양의 의미까지 배웠고, 공부가 쌓이면서 이야기를 들으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어요. 길바닥에 있을 때 고객님한테 우리만의 고유한 스토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씀을 드렸죠. 그게 잘 됐어요. 나중에 방송국에서 인터뷰도 해보고 매장도 여러 개 냈죠. 백화점 입점도 했으니 정말 잘 된 거예요. 중간에 쫄딱 망하기도 했는데, 그때 이후로 제품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서... 결과적으로 더욱 단단해졌어요. 그렇게 지금 계속 하고 있는 거죠.





색깔의 뜻이 적힌 명함과 제품들. ©marymond


사회적 의미를 지닌 브랜드와 협업을 자주 했다.

이런 얘기 하면 놀라실 수도 있는데, 사실 저는 기부를 꺼려합니다. 제가 운영하던 회사가 망한 뒤에 저를 아껴주던 직원분들 월급을 2년 동안 못 준 적이 있어요. 솔직한 마음으로, 내 사람도 챙기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챙기려고 하는 게 과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혼자서 기부는 하지만, 대외적으로 한번 돈을 기부해보자 얘기하진 않았죠.


꼭 돈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잖아요. 사실 마리몬드와 함께 일하기 전부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들 팔찌 하나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품을 먼저 만들고 스토리를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야기에 먼저 끌려서 제품을 만들고 싶기도 하거든요. ‘위안부’ 피해 문제를 처음 알았을 때 “하나된 소리, 하나된 마음”처럼 단결의 뜻을 지닌 문장을 혼자서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때마침 마리몬드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그전부터 사회적 의미가 담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저희 브랜드에 이미지가 생겨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유기견을 위한 ‘디어 도그’ 팔찌부터 심장병 어린이를 지원하는 ‘디어 하트’, 유니세프에서 의뢰한 네팔 팔찌, 유방암 환자를 위한 핑크 리본... 정말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진행하게 된 거죠.


마리몬드와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신경쓴 게 무엇인지.

처음부터 물어봤어요. 어르신들께서 원하시는 게 뭐냐고. 듣고 나니까 찡했어요. '이렇게 산 거, 우리는 괜찮으니까 너희들이라도 잘 살아라. 내가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하겠다. 하지만 우리를 잊진 말아라.’ 제가 아까 색채학을 공부했다고 했잖아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전통색인 ‘오방색’이 떠올랐어요. 오방색은 조상이 후손을 지키려는 마음이에요. 애들 옷을 만들 때 자주 사용하는 건 그 때문이에요. 저는 어르신들께서 우리에게 하는 말이 바로 오방색의 뜻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뜻이 잘 담기도록 하는 게 그 당시엔 중요한 일이었죠.


마리몬드 제품의 특징은 편지처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건데, 이미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듯이 제품을 만들던 저한텐 익숙한 일이었어요.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래서 한 것뿐입니다. 마리몬드하고 꽤 관계가 깊습니다.



최창남 메이드의 제품. ©marymond




새로운 팔찌. 특징이 있는가?

마리몬드에서 뜻과 디자인을 정리해서 주시다보니 저는 작업을 쉽게 하는 편이고, 여기에 해석을 조금 덧붙이는 것 말곤 없어요. 그래도 제가 뽑는 포인트가 있다면 열쇠, 그리고 블루&블랙입니다. 열쇠는 문제 해결의 가능성으로 보여요. 블루는 평화와 지혜를, 블랙은 신념과 용기를 잇는 의지를 뜻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 길을 선택하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아요. 처음 마리몬드에서 디자인을 주셨을 때 피드백을 많이 안 드린 것은 이미 제게 그렇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해결해서 평화를 만들겠다는, 잘못은 인정하고 사이좋은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자는. 저 혼자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앞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공존입니다. 누군가의 센 목소리가 전체의 흐름을 부정적으로 휩쓰는 것을 자주 봤어요. 다같이 잘 살자는 여유를 갖고 따뜻한 온도를 만드는 사회적 시각을 뿌리고 싶어요. 나만 옳은 세상이 아니니까요. 제가 젊은 고객에게 받은 게 너무 많아서 그분들에게 가장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샘플은 구상했는데 회사에 돈이 없어서 못 만들었어요.(웃음) 함께 사는 걸 깨닫고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 제겐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mary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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